선물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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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떼기
농촌에서의 밭떼기 거래도 선물 투자의 일종이다. '밭떼기'는 포전거래(圃田去來, 밭에서 재배하는 작물을 밭에 있는 채로 몽땅 사고파는 일)라고도 하는데, 생산물을 일정한 조건으로 인수하는 계약을 맺고 거래하는 농산물 재배를 뜻한다.
대다수 농민들은 배추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어도 별로 남는 게 없다고 한숨을 내쉰다. 이는 배추를 밭떼기로 넘기는 계약 재배 농가가 많기 때문이다.
농산물, 그 중에서도 특히 야채는 수급 불균형이 심한 상품 중에 하나다. 일반적으로 특별한 변수가 아니면 수요는 일정한 반면에 공급은 작황에 따라 들쑥날쑥한 경향이 크다. 생산량이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탓에 공장에서 생산되는 공산품에 비해 생산량의 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생산을 결정하고도 실제로 생산이 되어 시장에 나오기까지의 기간이 길어 가격이라는 신호에 의한 공급 조절도 쉽지가 않다. 쌀이나 과일은 보관 기간이라도 길어 출하 시점을 조정할 수 있지만, 야채의 경우는 이마저도 쉽지가 않다. 여기에 사람의 입맛이라는 것이 쉽게 조절이 되는 것이 아니고, 식습관은 문화 및 삶의 질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필수재의 성격을 띠고 있는 탓에 가격에 의한 수요 조절도 쉽게 되지 않는다.
이렇듯 수요와 공급의 가격 탄력성이 크지 않은 농산물은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여 농민들과 소비자의 시름을 더하게 한다. 이러한 농산물의 폭락과 폭등은 농민들 경제생활의 예측가능성을 급격하게 떨어뜨린다. 지금 당장의 배추값이 올라서 생산량을 더 늘리겠다는 선택을 하고 파종을 해도, 실제로 배추가 생산되어 출하되는 몇 달 뒤의 가격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피하기 위해 생겨난 배추 유통 구조가 일명 ‘밭떼기’ 거래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배추를 중간 유통 상인에게 평당 예측되는 생산량에 예년의 배추 값을 계산한 값을 지불하고 넘기는 것이다. 실제 농촌에서는 배추밭의 면적으로 가격을 지불하지만, 가격을 계산하는 구조는 배추의 생산량에 근거를 두게 된다.
밭떼기 거래를 하는 농민과 중간상인은 무슨 비용과 편익을 주고받을까? 농민들은 불확실성이라는 비용을 버리고 예측가능하며 안정된 수입을 얻게 된다. 물론 농사가 예상치보다 잘 되었고, 거기에 배추 가격까지 폭등했을 때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만, 이것은 폭락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성을 가져간 중간상인이 수익성도 함께 가져가는 것이 밭떼기 거래의 본질이다.[10]
중간 상인은 미리 돈을 주고 물건을 확보하는 것이고, 농민은 미래의 불확실한 수입을 현재의 확실한 수입으로 할인하는 것이다. 배추 값 폭등으로 소비자들의 불만이 많아지자 밭떼기를 하는 중간 상인들의 폭리를 비판하는 기사가 많이 나오지만, 경제적 관점으로 볼 때 중간 상인의 이득을 폭리로 낙인찍기는 무리가 있다. 밭떼기와 같은 선물거래는 단순히 물건만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물건을 따라 미래의 리스크와 기회가 동시에 교환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흉작으로 농사가 망해서 소출이 적거나 배추값이 폭락한다면 그 손해는 중간상인이 거의 짊어지게 된다.#
밭떼기의 예제. 농부가 도매상인과 배추 가격을 바탕으로 한 계약이다.
거래내용: 12/31에 배추 한 포기당 10만 원을 받고 넘기기로 12/1에 계약
상황 1: 12/31 당일, 배추 한 포기의 시장 가격 5만 원
상황 2: 12/31 당일, 배추 한 포기의 시장 가격 100만 원
위에서 배추 현물 거래를 현물 시세에 따로 맞춰서 넘기는 것이 아니라 선물 가격에 적힌 대로 거래한다. 즉, 농부가 한 포기당 10만 원을 받고 배추를 직접 배달해준다. 상황 1의 경우에는 농부가 한 포기당 5만 원의 추가 이익을 내지만 상인은 포기당 5만원의 손해를 봤을 것이고, 상황 2의 경우에는 리스크에 대한 프리미엄의 대가로 도매상인이 한 포기당 90만 원의 차액을 받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농부는 배추값이 100만 원이 되었을 때의 추가수익 90만 원을 포기하는 대신 폭락시의 위험을 회피하여 현재의 안정적인 수입을 얻는 것이다.
선물의 구조
선물 자체의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미래의 자산 거래를 미리 약속해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특정 자산을 특정 시점에 미리 정한 가격에 사거나 팔아야 하는 의무를 지금 선물이라는 형태로 거래하는 것으로, 선물의 대상이 되는 기초 자산은 미래에 거래된다. 영어 이름 그대로 미래의 가격을 예측하여 거래하는 것.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기초 자산의 거래를 예약하는 것이기 때문에 권리 거래 시 투자금이 기초 자산 거래에 필요한 금액보다 모자라도 거래가 성립된다.
예를 들어, 철수는 유명 제빵점 근처에 살고 영희는 마을 반대편에 살고 있다. 이 때 철수가 영희에게, 7일 뒤에 개당 천 원하는 크림빵 열개를 사주기로 했다 치자. 그러면서 철수는 미리 그 크림빵 값 만 원을 받는다.
만약 7일 뒤에 그 제빵점에서 1+1 할인행사를 진행하게 되면 철수는 먼저 선납받은 만 원에서 그 절반인 오천 원만 사용하여 물건을 구매한 후 영희에게 사다주면서 나머지 오천 원은 온전히 철수의 몫이 되며, 영희는 오천 원의 손해를 보고 물건을 사게되는 셈이다.
그러나 만약 7일뒤에 물가가 많이 올라 빵값이 천 원에서 천 오백 원으로 인상하게 되었다 치자. 약속을 한 철수는 무조건 크림빵을 사줘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기 돈 오천 원을 보태어 만 오천 원에 크림빵을 구매해서 영희에게 주어야만 한다. 그러면 영희는 만 오천 원의 가치가 있는 크림빵을 만 원에 구매하여 오천 원 이득을 본 셈이 된다. 만약 단순한 구두 약속이라면 한쪽에서 상대방의 불만을 무릅쓰고 파기하는게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는 계약이라면 상호합의가 없는 이상 불가능하다.
이 비유를 보면 왜 선물이 일반적인 거래보다 위험한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철수가 그냥 크림빵을 샀고 7일 뒤 가격을 보니 천원보다 낮아져서 파는 게 싫다면, 당장 돈이 필요하지 않은 이상 크림빵 값이 오를 때까지 팔지 않고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앞서 말한 예시대로 영희에게 사주기로 약속을 했다면(선물) 그 거래 시기를 임의로 조정할 수가 없다.
둘째로, 가진 돈으로는 고작 크림빵 1개를 살 수 있는 철수가 선물 없이 거래한다면 할 수 있는 거래는 돈으로 살 수 있는 크림빵 개수 한계 내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위에서 설명한 것 처럼 크림빵의 가격이 +-500원씩 달라진다고 한다면 이득과 손해도 +-500원이다. 하지만 영희에게 사주기로 약속한 경우엔 미리 받은 만원으로 거래를 진행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돈(자본)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거래가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동일한 수준 가격 변동이 일어나더라도 오천 원 이득을 보던가 오천 원 손해를 보던가가 된다. 자신이 가진 돈,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돈 이상의 손해를 볼 수 있는 것이다.